일본이 원주민 아이누를 말살하고 얻어낸 땅, 홋카이도

Posted by AGOS
2020. 4. 12. 19:49 사건관련으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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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면적은 100,210

홋카이도의 면적은 83,456

 

이렇게만 비교대도 홋카이도는 엄청나게 큰 땅임

 

 

일본이 영토 확장에 나서기 전까지 홋카이도는 에초지 라고 불려졌고

 

원주민 아이누가 수렵이나 채집 등을 생업으로 하며 독특한 문화와 풍습을 지내고 살고 있었지

 

 

 

근데 14세기 일본인들이 혼슈 동북지방의 일본 원주민 아이누를 정복하고

홋카이도 남부까지 진출하기 시작했고

 

16세기 말부터는 마츠마에 일족이 이 지역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었어

 

 

마츠마에는 막부에게서 일본 원주민 아이누와의 교역 독점권을 얻었고

일본인 상인들과 연합해 원주민 아이누들을 경제적으로 수탈했지

 

 

이에 일본 원주민 아니누들은 코샤마인 전쟁과 샤쿠샤인 전쟁을 일으키며 저항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일본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어

 

 

 

실제 일본 원주민 아이누족의 모습 1

 

 

 

 

실제 일본 원주민 아니누족의 모습 2

 

 

 

그리고 원주민 아이누를 일본과 동화시키지 않으면 러시아에게 회유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일본어 사용과 일본 풍속을 따를 것을 강제하는 동화 정책을 실시하고

 

1869년 에조치의 명칭을 홋카이도로 바꾸었어

 

 

일본인을 홋카이도로 집단 이주시키고 철도와 도로를 건설했지

 

홋카이도 개척의 역사는 일본 원주민 아이누 수탈의 역사이기도 해

 

일본 정부는 원주민 아이누들을 구토인이라 부르며 민족의 혼을 없애는 동화 정책을 펼쳤지

 

 

메이지 정부의 홋카이도 개척 수뇌부 사진이야

원주민 아이누들을 몰아내기 위한 수뇌부였겠지??

 

 

현재 홋카이도는 일본 제일의 평야 비율을 가진 땅이 되었어

 

일본 원주민 아이누들은 토지를 강탈당했고

강제로 이주되었으며

아이누 고유의 이름을 개명시켰고

아이누의 언어와 전통적 생활양식 또한 금지되었어

 

 

 

 

 

또한 원주민 아이누들은 농업과 목축을 강요당해

오랜 기간 아이누만의 어로와 수렵, 채집 등을 위주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꾸어왔던

아이누의 전통적인 문화는 파괴되었고

 

인구는 크게 줄고 사실상 멸족이 진행되고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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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식스호 침몰사건에 대해서 읽어봐

Posted by AGOS
2018. 12. 6. 16:28 사건관련으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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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쯤 고래잡이 배 포경선 에식스호가 침몰한 사건이 있었지


이 사건으로 선원들은 망망대해에서 94일을 포류했고


21명의 선원들은 서로를 먹으며 8명 만이 살아남은 사건이야


이 사건은 소설로도 나왔고 영화로도 나왔어


영화 제목은 < 하트 오브 더 씨 >


소설 제목은 < 모비딕 > 이야


내 글을 읽고 에식스호의 선원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싶다면


책을 읽어보는걸 추천해








이 당시에는 고래사냥이 유행했던 터라 


수많은 포경선들이 고래를 잡기 위해 항해를 했었고


어물전에는 머리잘린 고래시체들이 즐비했던 시기였지


이 사건의 주인공인 에식스호도 고래를 잡기 위해 


남아메리카에서 3700키로 떨어진 태평양으로 항해를 시작했어









목표지점에 도착하자 마자 운좋게도 에식스호의 선원들은


향유고래 무리를 마주치게 되었지


향유고래무리를 마주친 일등항해사 오웬 체이스는 


작은 보트에 선원들을 태운 후 비교적 작아보이는 향유고래 새끼한테


(그래도 5미터 이상)


작살을 명중시키는데 그 작살에 맞은 향유고래새끼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그들이 타고 있던 보트에 큰 충격을 주었어




보트에 구멍이 났으니 정신이 있겠어?


대충 장비만 챙기고 본선 에식스 호에 전부 올라탔지







그런데 향유고래에게도 모성애가 있던 것일까


본선에 올라온 오원 체이스와 선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어


24미터급의 초대형 향유고래가 악에 받힌듯 모비딕호로 돌진했기 때문이지


초대형 향유고래가 돌진한 포인트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그 구멍을 매우기 위해  조선공들은 급하게 내려가 구멍을 수리하라고 있는데


몇 분 후 더욱 더 다급한 조선공의 목소리가 들려와




'그 자식이 또 온다!'










새끼를 잃어 복수를 원했던 향유고래는 1차 충격의 2배가 되는 속도로 돌진해왔고


2차 충격으로 에식스호는 항해가 불가능할정도로 파손되어 버렸어


그렇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빠른 상황판단때문에 침몰하는 에식스호를 버리고


나머지 소형 보트 3척에 21명의 선원이 전부 탑승해 


단 한명도 빠짐없이 전부 살아남은 상태가 될 수 있었지


하지만 이때부터 비극은 시작되었어









좌초된 곳에서 바로 근처에는 타히티라는 작은 섬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식인 원주민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2400km 밖에 있는 칠레로 향하게 되었어 


목적지 까지는 60일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였는데


그들이 침몰하는 에식스호에서 건진 식량을 선원수대로 나눠보니


하루 170그램의 건빵과 0.23리터의 물이 전부


하루 필요한 열량의 반의 반도 안되는 양이었지







 





11월 21일 높은 파도가 배를 덮쳐 남은 식량을 모조리 적셔버렸어


이에 소금기가 가득해진 건빵은 나트륨 과잉혈증을 일으켰는데


만성 탈수 증상과 머리카락이 한웅큼씩 빠지는 현상이 일어났지









12월 초


선원들은 헨더슨 섬을 발견해


하지만 굶주린 사람들의 광기는 말릴 수 없었고


7일만에 섬에 있는 모든 식량을 소진해버려


얻을 것 없는 섬에 언제까지고 있을수도 없는 노릇


21명의 선원중에 3명은 혹시 지나가는 배가 있을지도 모르니 구조요청을 위해


섬에 남겨두기로 하고 나머지 18명의 선원들은 2척의 보트를 타고 다시 망망대해로 떠났지









포류 52일쨰


잦은 굶주림으로 선원들은 점점 인간의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했어


그러던 도중 유난히 허약했던 흑인 로슨이 죽었지


이제 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의 식량은 450g


사람들은 로슨의 시체를 먹을것인가 수장할 것인가로 논의하기 시작했어







식인종에게 먹히기 싫어 가까운 타히티 섬을 포기하고 먼 길을 달려온 선원들은


두달만에 동료의 시체를 뜯어먹을지 논의하게 된거야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던거지








결국 로슨의 시체를 먹기로 결정한 선원들은 


죄책감을 감추기 위해 사람이 연상될 수 있는


머리, 손, 피부를 전부 잘라내 바다에 던져버려





그리고 그들은 로슨의 시체에서 심장,간,콩팥을 뜯어내고 살을 잘라내어 먹기 시작하지






하지만 사람이 고기맛을 보자 굶주림이 가시기는 커녕


더 먹고 싶은 욕구가 강렬하게 들기 시작해..




















2월 6일



마침내 그들은 제비뽑기로 죽을 사람을 정하기로 했어




제비에 뽑힌 사람은 선장의 사촌동생 오웬 코핀이었지


선장은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내가 먼저 죽겠다고 하지만


오웬 코핀은 제비뽑기의 결과를 받아드리겠다고 하며


어머니에게 전할 말을 남긴 뒤


곧 아무것도 남지 않고 먹혀 없어졌어







2월 23일



그들의 보트는 근처를 지나던 도핀호에 의해 구조돼





구조된 두 남자는 서로를 믿지 못했던 탓일까


서로 맞은편 보트에 쭈구려 앉아 죽은 동료 선원의 뼈에서 골수를 빨아먹는다고 정신이 없었어




그들의 피부는 온통 종기로 덮혀있고 턱수염에는 피가 엉겨붙어 있었었지









두 척의 보트중 한대는 네구의 해골만을 태운체 발견되었어



아까 섬에 남았던 3명도 아사 직전에 간신히 구출되었지



일등 항해사 체이스는 이후 자신의 겪은 일을 책으로 펴내 베스트셀러에 오르지만


결국 정신병자 진단을 받게 되었어







에식스호의 선장은 다른 배의 선장으로 임명됬지만 


또 한번 배가 침몰되고 다시는 배를 타지 않았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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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군대 2번 사건이라고 들어봤냐

Posted by AGOS
2017. 6. 2. 15:47 사건관련으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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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짤은 국뽕세트중에서 머리를 맡고 있는 싸이의 사진


제대 하신분들이라면 알겠지만 꼭 한두번씩 재수없게 재입대를 하는 꿈을 꾸기 마련이야


존나빡쳐서 벌떡 일어나 꿈인걸 자각해야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하는 재입대 꿈


오늘은 군필자분들이 '야 나 싸이처럼 군대 2번 가는 꿈 꿨닼ㅋㅋㅋ' 라고 말하는것 중에서


싸이가 왜 군대를 2번이나 다녀왔는지에 대해서 쓰려고 해





싸이는 이렇게 뜨기 전까지만 해도 다른 병역비리를 저지를 연애인들과 비슷하게 욕을 많이 먹었어


싸이병역특례로 방위산업체에서 복무를 했는데 바보같이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본인이 병역을 이행하다 찔끔찔끔 공연을 다닌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서 재입대를 하게 된거야


공중파에서 저런 이야기를 했으니 당연히 국방부 싸이에 대한 민원이 쏟아지게 되었고


결국 부실복무로 재입대를 하게 되었어.


실제로 방위산업체같은 병역특례는 부실복무로 재입대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




사진은 산업체에서 많이 사용하는 절단 프레스기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진짜로 손가락이 날라간다


이에 싸이는 해당 결과에 소송을 걸었지만 당연하게도 패소하고 말아


재복무를 하는 중에도 이에 대해 항소를 했지만 뭐..결과는 너네도 알듯이 패소했지


판례는 아래에 링크를 걸어둘테니 궁금하면 들어가서 읽어봐


그리고 방송에서 말한 거지만 재복무통지를 받은 날짜로부터 2주일만 버티면


나이때문에 사회복무요원(당시 공익)판정을 받을 수 있었기에


술집에 가서 취객한테 쳐맞고 전치3주를 받는 물의를 일으키려고 했어


싸이의 심정도 이해가 가는게 당시 싸이는 쌍둥이 딸을 출산한 상태라서


출퇴근 하며 자녀의 아버지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싶었을테지만 싸이의 부인분께서


'너무 후지지않냐?' 라고 말을해 그냥 입대를 했다고 한당






여담으로 싸이와 엄청난 친분을 자랑하던 신해철은 


군대를 두번 보내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므로 싸이는 병역법위반으로 재입대보다는 감옥을 보내야 한다


라고 발언한 바 있어 끝






아래는 판례 링크야 궁금하면 들어가서 읽어봐

국가법령정보센터 /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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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의 서울대학교 부속병원 학살사건

Posted by AGOS
2017. 5. 24. 22:30 사건관련으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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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중요한 역사의 한 부분이지 우리는 북한 지도층을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된다.



이걸 잘 모르는 친구들이 많던데 이 사건은 


6.25전쟁 당시 북한군인들이 서울로 진주한 시점에서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에 침투해


민간인과 중상을 입은 군인들을 필터링없이 학살했던 사건이야 시작할께






그 당시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에는 개전 직후 살아돌아온 국군 장병들이 치료를 받고 있었어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 돌아오신 분들이기에 당연히 심한 부상을 입고 치료를 받고 있었지


그러나 6.25전쟁 상황이 상황인지라 개전 이후 북한군이 서울까지 쭉쭉밀고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시민은 물론 병원 관계자까지 짐을 싸서 피난을 갈 수 밖에 없었을꺼 아냐? 


이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국군장병분들은 졸지에 희생양이 되어버렸어






6월28일 아침 북한군은 서울대학교 부속병원까지 쳐들어왔고 병원에 남아 끈질기게 교전하던


1개 소대는 전멸했어.. 그 당시 병원에서는 피난하지 못한 환자들로 가득 차있었고 


잔인한 북괴놈들은 아무도 도망가지 못하게 병력을 병원 주위에 산개시켜놓았지


그리고 한 간부가 '원쑤놈들의 앞잡이들이 여기에 있다' 라며 선동을 시작했고 이내 학살극이 시작되었어


처음은 병동 곳곳을 순회하며 총으로 쏴죽였는데 비효율적이라 생각했나봐 


이제는 환자들은 전부 외부로 몰아넣은 다음에 총으로 쏴죽이기 시작해


겉으로는 '한국군 응징' 이었지만 군인이나 환자나 환자복을 입은 상태로는 구분이 쉽지 않아서


민간인도 대량으로 학살당했을것 이라고 기록이 되어있어






학살은 오후까지 이어졌고



마지막까지 숨어있다 적발된 인원들은 본보기로 석탄더미에 생매장되어 죽었어


현재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현충탑이 세워져있지






강신재의 장편소설 '임진강의 민들래'에서 여주인공 이화의 애인이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야


땅에 파묻혔는데 간신히 살아남아 여친에 집에서 숨어살았다고 해 당시의 참극이 그려져있는 유일한 소설이지







국방부에서 그린 짤막한 웹툰이 있다고 들었다


http://comic.naver.com/challenge/detail.nhn?titleId=689525&no=1


간략히 잘 정리되어 있으니 글을 읽기 싫은 친구들은 읽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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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학교 사건사고에 대해 읽어봐라 - 연세대편

Posted by AGOS
2017. 4. 24. 13:50 사건관련으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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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세대학교 커뮤니티에 왁싱이라는 제목으로 생활과학대 여대생이 자신의 XX를 왁싱한 것을 올렸다.

육덕진 몸매에 환호하던 연대생들은 신상을 털기 시작하였고 결국 생과대 신입생 21살 여자라는것이 밝혀짐..

소문에 의하면 그렇게 XX를 좋아해서 술만 먹으면 오픈이었다고 한다






2.


15학번 신입생 OT 일베 캐릭터 사용 논란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15학번 오티에서 일베에서 제작한 '노알라' 캐릭터가 등장해 논란이 일었다






3. 


정기전중에 술취한 고려대생이 연대진영에서 심하게 깝죽됨

처음에는 웃으며 넘기다가 고려대생이 X드립과 패드립까지 하자 열받은 남대생들이 집단 리치를 가한 사건

경찰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가해자들은 도망가고 피해자만 남은상태

범인은 잡지 못했다고 한다




4.

국제캠퍼스 야외 XX 사건


15학번 신입생 커플이 국제캠퍼스 옥상에서 X스를 하는 동영상이 페이스북에 노골적으로 유포되었다

얘네들이 얼마나 미쳤냐면 국제캠퍼스 옥상이 워낙 낮아서

맞은편에 있는 기숙사에서는 그냥 훤히 다 보인다는 거였음...

남학생은 꿋꿋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여학생은 휴학하고 반수를 하여 서울대에 들어갔다

[여학생은 3수 상태였다]

또한 여기에서 남학생의 신상은 어느 학과인지도 모를 정도로 터리지 않았지만

여대생은 학과 재수학원 등등 모든 신상이 털렸다




5.

연세대 폭포사건

내용생략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264468#btn_hide01_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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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박멸운동의 계기가 된 사진 보고가라

Posted by AGOS
2017. 3. 26. 20:00 사건관련으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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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9살짜리 소녀가 복통을 호소해 수술을 한 결과..

소장에 회충이 꽉 차있었다.


회충의 수는 총 1,063마리 의사들이 집적 세 본 결과라고 한다


당시 분노한 병원장은 '코리아타임즈'에  사건을 알려 전세계적으로 큰 반항을 일으켰다












9살짜리 소녀는 회충으로 소장이 괴사해 결국 죽고 말았던 안타까운 사건


그 이후로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 두번

회충약을 먹고 꼬물거리는 회충을 세어 보고 한 뒤

 채변봉투를 거두는 제도가 생겨났고 기생충박멸사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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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알을 비빈 피자를 팔다가 걸린 소년

Posted by AGOS
2017. 2. 1. 01:30 사건관련으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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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오스틴 북부에 피자가게에서 일하던 오스틴 마이클 시몬스(18세)는 피자에 자신의 불알을 문지른 뒤에


손님에게 제공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9월 2일 피자 가게를 방문한 브렌트 브라트레이 씨는 자신이 주문한 피자에 소년이 불알을 문지르는 모습을 목격했다.


브라트레이 씨는 시몬스에게 나이를 물었고 그 후에


그 나이라면 사람들에게 파는 피자에 불알을 문지르는게 좋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거니?


라고 말하자


소년은 좇송합니다. 라고 하였다









경찰조사에서 소년은 퇴근 직전에 피자를 주문해 짜증이 났다고 했다




결론 : 밤늦게 피자시키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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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카페가 있는 강도얼짱 이미혜라고아냐?

Posted by AGOS
2017. 1. 17. 19:00 사건관련으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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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넘은 일이라 한번 글을 써본다 너네 외모지상주의의 끝판왕을 보여준 강도얼짱 이미혜 사건이라고 아냐?




당시 이렇게 범죄자를 옹호하는 팬카페가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가 많았어


그 당시에 회원수 34,932명이면 알만하지? 


그럼 왜 이 사람의 팬클럽이 만들어졌을까? 의로운 행동을해서?


범죄자를 두들겨 팼는가? 홍길동마냥 재벌들의 금고를 털어서 가난한 사람한테 나누어주는 의로운 행동을 했는가?


아냐 이유는 그냥 예뻐서야 수배서에서도 '키 165cm의 미인형' 이라고 적혀있었지


   




죄명은 특수강도 혐의인데


경상북도 포항시에 있는 한 카풀 승강장에서 피해자를 태워주는척 속여 칼로 위협하고 금품과 카드를 뺏어서 특수강도 혐의가 적용되었어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알아? 같이 있으면 비슷해지거든


원래 이미혜씨는 그렇게 심성이 불량한 사람은 아니었어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2남중 장녀로 태어난 이미혜씨는 범죄자의 길을 걸은 것과 다르게 과거에는 상당히 평범하게 자랐는데


대학에 진학한 후 폭력전과 1범이었던 남자친구(31살)을 만난것이 계기가 되어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거야


남자친구 측에서 편의점아르바이트를 하던 이미혜 씨한테 끊임없이 찾아가면서 고백을 했다고 해


그런데 말이야 양아치 꼴통을 사귀었으면 적당히 사귀다 끝내야되는데 그게 아니라  점점 남자친구한테 빠지게 된거야


그리고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카풀 승강장에서 흉기로 피해자를 위협하고 금품과 카드를 뺏어서 특수강도 혐의로 지명수배가 되었는데


지명수배를 당하고 경찰의 추적을 받자 원룸을 얻어 남자친구와 장기 도피행위를 벌여


하지만 이 와중에 이미혜 씨는 어머니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았고 이를 알아챈 경찰은 어머니를 미행해


강원도 속초 낙산사에서 1년만에 체포가 돼


여자측은 순순히 잡혔지만 남자측은 횟칼을 휘두르면서 저항이 거셌다고 알려져 있어






팬클럽이 생긴 사건의 발단은 한 네티즌이 수배전단을 찍어서 인터넷에 뿌린거야 


2003년, 한참 얼짱 열풍이 불었을때니까 강도얼짱이란 별멍을 붙여주며 심지어 팬클럽 까지 만들어지게 되었어


여기만 봐도 병신같지만 발정난 이 팬클럽새끼들은 범죄 동기같은것을 미화하기 시작했어


어쩔수 없었을꺼다, 협박을 받았을꺼다 이런식으로 


그래서 뉴스한테도 비난을 받았지









체포당한 후 이미혜씨는


'인터넷에 카페가 생기고 난 뒤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불안했다. 쫓겨 다니는 동안 바깥 출입은 거의 못했다. 혹시라도 외출할 경우에는 항상 안경과 모자를 쓰고 다녔다'


라고 진술했어


사실 팬이라며 도와주겠다고 카페를 만들어서 수배서를 공공연하게 홍보하는 둥 지랄 염병을 하지만


오히려 이 퍼진 수배서 탓에 수배자는 도주하는데 더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검거되어서 출소를 한 지금까지도


강도라는 꼬리표가 붙은 채 인터넷에 돌아다니게 됬으니 팬보다는 안티팬 요소가 더 강한것 같아


여러모로 병신같은 사건이지









비난이 거세지자 카페는 폐쇄되었는데 폐쇄 사유를 보면 뭐가 문제인지 파악을 못한것같아







아 당시 이미혜씨 인터뷰 내용을 첨부할께



A : 팬클럽이 생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B : 어처구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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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사이비종교 백백교라고아냐?

Posted by AGOS
2016. 8. 7. 20:33 사건관련으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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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시리즈글입니다.


[일제만행] 조선 기생의 생식기 보관사건





원래 나중에 쓰려다가


어떤분이 덧글로 첫번째 병도 궁금하다 그러셔서 바로 쓰기로 한다.





국립과학수사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부터 연구원들 사이에 전해지는 괴담이 있어


국과수 연구관 B동 부검실 312호에는 일제시대부터 내려오는 미해결 사건의 증거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해


이곳에는 60년동안 작동중인 냉동고가 있는데 그 냉동고에는 포르말린 두 병이 보관되어 있어


한 병에는 목이 잘린 사람의 얼굴이 들어있고 다른 병에는 바늘자국으로 범벅된 여성의 생식기가 보관되있어




저번에는 홍련의 생식기가 담긴 두번째 병에 대해서 서술했지?


이번엔 첫번째 병 목잘린 사람의 얼굴이 들어있는 병에 서술할께


이 병은 '백백교주의 머리' 란 이름이 붙여진 병이야


백백교는 일제감정기에 존재한 사이비 종교 집단인데 교주의 지시에 따라 300건이 넘는 살인사건이 이루어졌어





<백백교의 제단>





백백교의 교리는 


백백백의의의적적적감응감감응하시옵숭성(白白白衣衣衣赤赤赤感應感感應하시옵崇誠)


만 외우면 무병장수한다는 것이었어


그리고 곧 종말의 날이 와서 동 서양을 막론하고 불과 물의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되니


백백교가 마련한 본소에서 생활하다가 물의 심판날에 금강산의 피수궁으로 옮겨가 교주인 '전용해'가 


신도드를 각자 원하는 세상이 있는 천국으로 인도해 준다는 것이였지








희망을 찾기 어려웠던 당시 백백교라는 안식처를 가지게된 민중들은 


너도나도 백백교에 가입하게 되고 


백백교는 홍보를 위해


폐광에 금을 숨긴 뒤에 전용해의 힘으로 금광이 다시 터졌다는 식으로 사람을 모았어

(홍경래의 난에도 사용된 수법)








백백교의 교주는 배운거 없는 멍청한 사람이었지만


타고난 얼굴로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었고 교세를 이용해 간부들을 각도에 보내


예쁜 딸을 가진 부모들을 골라서 백백교에 입교시킨 뒤에 딸을 시녀로 바치게 하여 강간했어


이렇게 얻은 첩들은 많다 싶으면 죽인뒤에 암매장을 했지



이런식으로 자신의 누이동생 유전정이 강간당한것에 분노한 유곤용은 


백백교를 무너뜨릴 생각으로 백백교에 입단해 교주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해






조부와 부친처럼 속히 재산을 바치라는 말이었다. 유곤용은 긴장한 어조로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그것도 대단히 좋은 말씀이나 사업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지금 당장 올라오기는 어렵습니다.”

‘신의 아들’ 대원님의 말씀을 감히 거부하는 것은 백백교 교단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용해는 격분한 어조로 다그쳤다.

“그럼, 내 명령을 복종하지 않겠다는 말이지?”

그리고 옆에 앉은 유정전을 보고 또 한 번 소리쳤다.

“네 오라비 잘났다.”

일격을 당한 유곤용은 그제서야 본심을 드러냈다.

지난 일주일간 그가 보인 행동은 교주 전용해를 만나 백백교의 악행을 따지기 위한 연극일 뿐이었다.

유곤용은 “백백교의 교리가 도대체 무엇이냐? 그런 얼치기 종교가 어디 있느냐”며 욕질을 했다.

세상에 나서 그런 욕설을 처음 듣는 전용해는 흥분한 나머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나이프’를 빼어들고 유곤용을 찌르려고 덤벼들었다. 

이 순간이 그에게는 천려(千慮)의 일실(一失)이었으니 흉악무도한 그들의 죄상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단서가 될 줄이야 

악의 천재인 그도 예상치는 못하였을 것이다.

안방에서 소란이 일어나자 대청마루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고 있던 전용해의 수하들이 교주의 신변 보호를 위해 방문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유곤용의 힘은 의외로 강했다. 쇄도하는 수하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전용해의 멱살을 잡아 넘어뜨렸다. 

힘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음을 직감한 전용해는 죽을 힘을 다해 그의 손을 벗어나 도망쳤다. 수하들도 각자 살길을 찾아 도주했다.

유곤용은 위험을 직감했다. 백백교 교도들이 떼지어 몰려올 것이 분명했다. 

그는 동대문서 왕십리주재소에 달려가 사정을 말하고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백백교 사건의 정체', ‘조광’ 1937년 6월호 中>







생각의외로 유곤용의 힘이 존나쌔서 교주부터 해서 다도망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곤용은 그 즉시 경찰을 불러서 서울 중구에 있던 전용해의 집을 수색하였어

본인은 도주하고 없는 대신 참모인 '이경득' 등을 체포하는데 성공하였고

이것이 백백교의 범죄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어




그들은 신도들의 땅과 재산을 기부 명목으로 빼앗고

여성들을 무차별 강간 하였으며 교단의 비밀유지를 위해 이용한뒤 살해해 암매장 하였어

때문에 범죄의 질이 매우나쁘다 라고 판단한 경찰은 보도를 전면금지 시키고 수사를 시작했어






백백교의 아지트는 전국에 퍼져있었고 

조사한 결과 총 346구의 시신이 발견되었어

이는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고

전 세계가 이 사건을 알게돼




그러던 도중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일제는 더이상 수사를 진행하지 못했고

조사는 중단되었다가 몇년 뒤에 다시 진행되어

1941년 백백교 간부의 선거공판에서 마무리 되었어



김서진 (170명 살해) 
이경득 (167명 살해)
문봉조 (127명 살해)


전부 사형


가장 문제가 되었던 교주 전용해는 몇달 후

솔밭에서 목에 칼이 찔린 채로 발견되었는데 

얼굴부분을 산짐승에게 뜯어먹혀 그것이 진짜 전용해인가 하는 논란이 있었어


그러나 그의 아들이 시체를 보고 울부짖었던 것과 나머지 진술을 토대로

경찰은 전용해가 자살한것으로 판정지었어



여담으로 전용해는 희대의 용안으로 유명했어

당시 사람들은 얼굴을 보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신용이 생기고 '이 사람을 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지만 전용해는 워낙 철저해 사진을 한장도 남기지 않았고 가명또한 20개가 넘었으며

결정적으로 시체도 심하게 훼손되어 그의 얼굴을 확인할수가없어





끝으로 이 사건에 매우 충격을 받은 일제는

전용해의 시신을 수습하여 두개골을 추출해 '범죄형 두개골'의 표본으로 지정하였는데

'골상학에 영향을 받았는데 골상학은 이미 19세기에 허구로 결론남'

이는 2011년 10월 25일까지 국과수에 보관되어 있다가 논란에 휩쓸려 폐기 화장한 뒤에 봉선사에서 위령제를 지내주었어






국과수는 이 두상이 전용해의 것이 맞는지, 왜 이 두상이 보관되고 있는지 자세한 이유를 모르고

단지 역사적 이유때문에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었다고 설명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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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만행]홍련, 명월이 사건이라고 아냐?

Posted by AGOS
2016. 8. 5. 15:54 사건관련으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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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과학수사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부터 연구원들 사이에 전해지는 괴담이 있어


국과수 연구관 B동 부검실 312호에는 일제시대부터 내려오는 미해결 사건의 증거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해


이곳에는 60년동안 작동중인 냉동고가 있는데 그 냉동고에는 포르말린 두 병이 보관되어 있어


한 병에는 목이 잘린 사람의 얼굴이 들어있고 다른 병에는 바늘자국으로 범벅된 여성의 생식기가 보관되있어








너네들이 뭐에 흥미를 가질진 내가 잘 아니까


두번째 병을 먼저 설명해줄께






이 생식기의 주인은 일제시대 최고의 기생이라고 불려지는 '홍련'의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어


홍련은 18살에 조선 최고의 기생이 되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완벽해 눈이 마주친 모든 남성을 홀렸다고 해


오죽하면 조선 남자들은 얼굴 보기도 힘들고


일본 수뇌부들조차 그녀와의 밀회를 꿈꾸었다고 하네


그런데 하나의 문제가 있어


그녀와의 잠자리를 가진 남자들이 하나 둘 죽어나가기 시작하는거야


소문이 난 후에 


당시 일본의 수뇌부였던 '타케시 오자와' 또한 원인 모를 병으로 죽자


곧바로 홍련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졌어


그리고 며칠뒤에 홍련 또한 죽었다고 하지


자살인지 타살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으니 아마 타살이거나 자살을 하게 만든 것 같아


일본 경찰들은 수 많은 남자의 목숨을 뺏어간 원인을 밝히기 위해 홍련의 시신을 해부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보관된 것이 현재 국립과학수사원에 보관된 홍련의 것이라는 이야기가 정설이야




이 잘린 생식기는 일반인 것에 비해 매우 크고 이리 저리 뚫리고 잘린 끔찍한 모습을 하고있어


실제로 시민단체 문화재 제자리찾기운동 사무총장은 '차마 있어서는 아니될것 봐서는 아니될것을 보고야 말았다'


라는 말을 한 뒤에 


'인간의 대한 신뢰가 한번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여자 엉덩이를 축구공처럼 도려냈다 엉덩이부터 앞쪽까지


성기는 물론 나팔관과 자궁까지 다 있었다 피부는 여전히 윤기나고 주름 하나 없었지만


도려낸 자국이 수술용 메스가 아닌 아무데나 있는 칼로 찢어낸 듯이 너덜너덜했다.


재미로 장난으로 기생 성기를 잘라내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인간의 마성에 분노가 폭팔해 올라왔다.'


라는 말을 하며 분노를 감추지 못해




이 사진은 표본을 공개하라고 청원한 사람에 의해 공개된 사진이야



첫번째 병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서술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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