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사이비종교 백백교라고아냐?

Posted by AGOS
2016. 8. 7. 20:33 사건관련으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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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시리즈글입니다.


[일제만행] 조선 기생의 생식기 보관사건





원래 나중에 쓰려다가


어떤분이 덧글로 첫번째 병도 궁금하다 그러셔서 바로 쓰기로 한다.





국립과학수사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부터 연구원들 사이에 전해지는 괴담이 있어


국과수 연구관 B동 부검실 312호에는 일제시대부터 내려오는 미해결 사건의 증거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해


이곳에는 60년동안 작동중인 냉동고가 있는데 그 냉동고에는 포르말린 두 병이 보관되어 있어


한 병에는 목이 잘린 사람의 얼굴이 들어있고 다른 병에는 바늘자국으로 범벅된 여성의 생식기가 보관되있어




저번에는 홍련의 생식기가 담긴 두번째 병에 대해서 서술했지?


이번엔 첫번째 병 목잘린 사람의 얼굴이 들어있는 병에 서술할께


이 병은 '백백교주의 머리' 란 이름이 붙여진 병이야


백백교는 일제감정기에 존재한 사이비 종교 집단인데 교주의 지시에 따라 300건이 넘는 살인사건이 이루어졌어





<백백교의 제단>





백백교의 교리는 


백백백의의의적적적감응감감응하시옵숭성(白白白衣衣衣赤赤赤感應感感應하시옵崇誠)


만 외우면 무병장수한다는 것이었어


그리고 곧 종말의 날이 와서 동 서양을 막론하고 불과 물의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되니


백백교가 마련한 본소에서 생활하다가 물의 심판날에 금강산의 피수궁으로 옮겨가 교주인 '전용해'가 


신도드를 각자 원하는 세상이 있는 천국으로 인도해 준다는 것이였지








희망을 찾기 어려웠던 당시 백백교라는 안식처를 가지게된 민중들은 


너도나도 백백교에 가입하게 되고 


백백교는 홍보를 위해


폐광에 금을 숨긴 뒤에 전용해의 힘으로 금광이 다시 터졌다는 식으로 사람을 모았어

(홍경래의 난에도 사용된 수법)








백백교의 교주는 배운거 없는 멍청한 사람이었지만


타고난 얼굴로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었고 교세를 이용해 간부들을 각도에 보내


예쁜 딸을 가진 부모들을 골라서 백백교에 입교시킨 뒤에 딸을 시녀로 바치게 하여 강간했어


이렇게 얻은 첩들은 많다 싶으면 죽인뒤에 암매장을 했지



이런식으로 자신의 누이동생 유전정이 강간당한것에 분노한 유곤용은 


백백교를 무너뜨릴 생각으로 백백교에 입단해 교주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해






조부와 부친처럼 속히 재산을 바치라는 말이었다. 유곤용은 긴장한 어조로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그것도 대단히 좋은 말씀이나 사업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지금 당장 올라오기는 어렵습니다.”

‘신의 아들’ 대원님의 말씀을 감히 거부하는 것은 백백교 교단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용해는 격분한 어조로 다그쳤다.

“그럼, 내 명령을 복종하지 않겠다는 말이지?”

그리고 옆에 앉은 유정전을 보고 또 한 번 소리쳤다.

“네 오라비 잘났다.”

일격을 당한 유곤용은 그제서야 본심을 드러냈다.

지난 일주일간 그가 보인 행동은 교주 전용해를 만나 백백교의 악행을 따지기 위한 연극일 뿐이었다.

유곤용은 “백백교의 교리가 도대체 무엇이냐? 그런 얼치기 종교가 어디 있느냐”며 욕질을 했다.

세상에 나서 그런 욕설을 처음 듣는 전용해는 흥분한 나머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나이프’를 빼어들고 유곤용을 찌르려고 덤벼들었다. 

이 순간이 그에게는 천려(千慮)의 일실(一失)이었으니 흉악무도한 그들의 죄상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단서가 될 줄이야 

악의 천재인 그도 예상치는 못하였을 것이다.

안방에서 소란이 일어나자 대청마루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고 있던 전용해의 수하들이 교주의 신변 보호를 위해 방문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유곤용의 힘은 의외로 강했다. 쇄도하는 수하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전용해의 멱살을 잡아 넘어뜨렸다. 

힘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음을 직감한 전용해는 죽을 힘을 다해 그의 손을 벗어나 도망쳤다. 수하들도 각자 살길을 찾아 도주했다.

유곤용은 위험을 직감했다. 백백교 교도들이 떼지어 몰려올 것이 분명했다. 

그는 동대문서 왕십리주재소에 달려가 사정을 말하고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백백교 사건의 정체', ‘조광’ 1937년 6월호 中>







생각의외로 유곤용의 힘이 존나쌔서 교주부터 해서 다도망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곤용은 그 즉시 경찰을 불러서 서울 중구에 있던 전용해의 집을 수색하였어

본인은 도주하고 없는 대신 참모인 '이경득' 등을 체포하는데 성공하였고

이것이 백백교의 범죄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어




그들은 신도들의 땅과 재산을 기부 명목으로 빼앗고

여성들을 무차별 강간 하였으며 교단의 비밀유지를 위해 이용한뒤 살해해 암매장 하였어

때문에 범죄의 질이 매우나쁘다 라고 판단한 경찰은 보도를 전면금지 시키고 수사를 시작했어






백백교의 아지트는 전국에 퍼져있었고 

조사한 결과 총 346구의 시신이 발견되었어

이는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고

전 세계가 이 사건을 알게돼




그러던 도중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일제는 더이상 수사를 진행하지 못했고

조사는 중단되었다가 몇년 뒤에 다시 진행되어

1941년 백백교 간부의 선거공판에서 마무리 되었어



김서진 (170명 살해) 
이경득 (167명 살해)
문봉조 (127명 살해)


전부 사형


가장 문제가 되었던 교주 전용해는 몇달 후

솔밭에서 목에 칼이 찔린 채로 발견되었는데 

얼굴부분을 산짐승에게 뜯어먹혀 그것이 진짜 전용해인가 하는 논란이 있었어


그러나 그의 아들이 시체를 보고 울부짖었던 것과 나머지 진술을 토대로

경찰은 전용해가 자살한것으로 판정지었어



여담으로 전용해는 희대의 용안으로 유명했어

당시 사람들은 얼굴을 보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신용이 생기고 '이 사람을 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지만 전용해는 워낙 철저해 사진을 한장도 남기지 않았고 가명또한 20개가 넘었으며

결정적으로 시체도 심하게 훼손되어 그의 얼굴을 확인할수가없어





끝으로 이 사건에 매우 충격을 받은 일제는

전용해의 시신을 수습하여 두개골을 추출해 '범죄형 두개골'의 표본으로 지정하였는데

'골상학에 영향을 받았는데 골상학은 이미 19세기에 허구로 결론남'

이는 2011년 10월 25일까지 국과수에 보관되어 있다가 논란에 휩쓸려 폐기 화장한 뒤에 봉선사에서 위령제를 지내주었어






국과수는 이 두상이 전용해의 것이 맞는지, 왜 이 두상이 보관되고 있는지 자세한 이유를 모르고

단지 역사적 이유때문에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었다고 설명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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