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법계의 흑역사 스가야 토시카즈 사건

Posted by AGOS
2016. 8. 3. 02:10 사건관련으로 쓴 글/일본의 살인사건 시리즈
반응형

일본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건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


스가야 토시카즈 사건(아시카가 사건이라고도 불림)




읽다보면 속이 터지는 느낌이 들며 분노를 주체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글이다.



이분이 바로 이번 글의 주인공인 스가야 토시카즈 씨다


당시 나이 47세



사건은 1990년 5월에 시작되었어


일본 도치기현 아시카가시에 살고 있던 4살짜리 여자 꼬맹이가 어떤 남자에게 끌려가서 사라져


그 후 그 꼬맹이는 하천에서 알몸으로 발견되고 동시에 옷에 묻어있는 정액도 발견되었지



(여자아이의 시신이 발견된곳)




너네가 사는 동네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으면 어떻게됬을것같아? 그래 발칵 뒤집히지


동네는 난리가 났고 언론에서도 해당 사건에 대해 대서특필하기 시작해


사건이 심각했기 때문에 일본 전역에 확산되기 시작했는데


이게 왜 이슈가 되었냐면 과거 이 지역에서 두번이나 유아 살인사건이 일어났기 떄문이야








그렇게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됬지만 여기서 일본 경찰의 무능함이 드러나게 되지




첫번째



경찰은 7개월동안 수사를 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어


그래서 프로파일링을 시작했는데

(범행 패턴을 분석해 범인의 심리상태나 경향을 특정지어 범인의 프로필을 뽑아내는 수사법)


생각해봐 1990년이야 이때의 프로파일링이 효과적인 방법이겠어?


전혀 아니지 허점 투성이인 수사 방법이었지


그 증거로 경찰들은


독신남은 대부분 로리콘이다. 그러므로 이 동네에서 결혼도 안하고 음흉하게 사는 독신을 찾으면 된다


(여기서 스가야 토시카즈가 용의자로 지목됨)


그리고 경찰이 제시한 증거품은 스가야가 자위하고 밖에다 버린 휴지 였어


경찰의 주장은 dna가 일치하니 너가 범인이다! 하고 스가야를 감옥에 쳐넣었어


여기서 문제는 당시 dna검증 기법은 매우 불확실했고 평소에 법원에서도 DNA감정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었지만


당시 경찰은 여론이 너무 안좋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한놈 잡아서 조져야 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나봐





이후 계속된 스가야의 항소에서는 수사과정중 경찰의 폭행 등 온갖 욕설을 다 들었다고 고백하지만 전부 무시당하고


결국 2000년 무기징역이 확정되었어






그리고 17년 후 가족이 DNA재검증을 요청하게 되고 최초 지방법원에서는 이를 묵살했으나


결국 도쿄 고등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였어


그리고 충격적인 반전이 나왔는데(이미 다 예상하겠지만)


최초 발견된 정액의 DNA와 스가야의 휴지 DNA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발견되었다는 거야















스가야의 변호인단 사진이야




그리고 2008년 5월말 스가야의 변호인단은 이를 근거로 스가야의 형집행 정지를 정식 요청하게 되고


3일 후 스가야는 석방이라는 결과가 되서 감옥을 나오게 되었어





이미 백발노인이 된 스가야 사진이야



그리고 우리나라 돈으로 10억원에 다하는 배상금을 받고 당시 스가야를 감옥에 넣은 검사들이


스가야 앞에서


'진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17년 반동안 자유를 빼앗아 온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라며 무릎꿇고 사과하게 돼























17년을 감옥에서 보냈는데 10억원으로 되나..무척 안타깝더라




다음 글은 저 여자 꼬맹이에 대해서 써볼께








일본 사건 사고 글



독극물 카레 살인사건


반응형